>
덧글을 다시려면
로그인을 하셔야합니다
|
Dvorak's Symphony No. 9, From the New World Saturday, Oct 11, 2008, 8:00 pm Artists Program 공연전에 맛있는 걸 먹고 가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대부분 시간에 쫓겨가다보니) 어젠 아주 느긋하게~ 맛있는 것을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갔다. 시작부터 좋은 느낌? 히히. 예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사실 어제 공연을 보기 위해 도박을 했다. 화요일(10월 7일)과 토요일(10월 11일), 이 이틀간 뉴욕에선 쇼팽 콩쿠르 우승자 3명이 공연을 했다. 10월 7일: 아르헤리치(카네기홀: 협연) vs. 블레하츠 (뉴욕필 협연) 10월 11일: 윤디 리(카네기홀: 독주회) vs. 블레하츠 (뉴욕필 협연) 블레하츠는 2005년도 우승자, 윤디 리는 그 직전인 2000년도 우승자. 아르헤리치는 옛~~날. ㅋㅋ 블레하츠가 우승할 당시 공동 3위가 임동민/임동혁 형제다. 그때 2위가 없었는데 심사위원 중 한명이 ""He so outclassed the remaining finalists that no second prize could actually be awarded"라고 말했댄다 -0- (출처: abc뉴스 - 클릭) 이 상황에서 하나는 포기해야만 했고..나는 윤디 리를 포기했다. 그렇지만 이게 참 위험했던 것이 잘 알려져있듯이 아르헤리치는 공연캔슬로 악명이 높은 연주자. 그러나 나는 티켓교환이 1회에 한해서 가능한 subscription으로 윤디 리를 샀었고 그 후 윤디 리를 포기하고 윤디 리와 같은 시각에 열리는 블레하츠 공연을, 그리고 7일은 교환환불불가인 싱글티켓으로 아르헤리치 공연티켓를 마련하고나니 이 상황에서 7일의 아르헤리치가 공연을 취소할 경우 나는 그야말로 한마리 bird가 되는 상황 -_-;; 블레하츠 공연은 두 번 모두 일찌감치 매진된 상황이라 아르헤리치가 공연을 취소한다고해도 블레하츠 화요일 공연 표를 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르헤리치 공연 며칠전부터 카네기홀 웹사이트를 들락날락거리며 공연취소공지가 뜨지는 않았나 확인해보고있었는데;; 캔슬 공지는 다행히도 없었지만 공연장에 도착해 프로그램 책자 안에 연주자 변경을 알리는 삽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아니 아르헤리치가 무대 위로 걸어나올떄까지도 완전히 안심하지 못하고 있었다 -_-;; (공연캔슬 한번 당해보면 이렇게 된다;; 그래서 난 마주어를 믿지 않는다!) 연주자 한번 못본다는게 무슨 대수냐..라고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 고심해서 위험부담을 안으며 짠 전략이었고, 큰 위험부담을 안을수록 큰 보상을 가져다준다는 인생의 법칙(!) (꼭 주식이 아니더라도 ㅎㅎ)대로 원하던 두 패를 모두 손에 쥐게 되었을 떄의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물론 윤디 리를 못보게 된건 좀 아쉽지만 얘는 한국에도 꽤 자주 오는 것 같으니 나중에 한국에서 보지, 뭐..하는 그런 생각이 있기도 했으니 크게 아쉽진 않았다. 게다가 200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블레하츠는 이게 뉴욕필 데뷔무대였다. 지난주 토요일 메트 뮤지엄에서 뉴욕 데뷔 리사이틀을 하긴했는데 그때는 모건 라이브러리에서 있었던 렉쳐를 가야했기 때문에 리사이틀은 못봤고, 그러니 뉴욕필 무대를 놓칠 수는 없었던 것. 게다가 공연티켓은 어찌나 빨리 매진이 되던지. 물론 대부분 블레하츠를 보러 온 사람들은 아니다. 오케스트라의 subscription concerts 티켓은 절대적으로 프로그램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때문. (다시 말해 카네기홀같이 상주 오케스트라가 없는 곳의 오케스트라 공연은 연주곡명보다는 오케스트라 이름과 독주자, 지휘자가 티켓판매를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 왜냐면 그 오케스트라들은 "방문"해서 공연하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블레하츠가 무척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드보르작 신세계교향곡과 같이 프로그래밍된데다가 치는 곡도 쇼팽의 협주곡. 사람들은 쇼팽콩쿠르 우승자가 쇼팽을 친다는 것보다는 그냥 프로그램이 쇼팽과 드보르작, 그러니까 상당히 대중적인 프로그램이라는 것에 훨씬 큰 의미를 부여하며 티켓을 산다 (오케스트라 공연 티켓구매자의 구매패턴: subscriber들은 요일을 따져 시리즈를 구입하고, 싱글티켓구입자들은 프로그램을 따진다) 그러니 오케스트라를 보러 갈때 대부분 독주자를 보기 위해 티켓을 구입하는 나는 상당히 비전형적인 구매패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 어쨌든 어제 공연 끝나고도 정말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블레하츠가 무대 위로 등장하던 순간 너무 놀랐다. 음반자켓사진만 봤었는데 -.- 무대 위로 걸어나오는 것을 보니 완전..."애기"잖아! (이건 내 오리지널 표현이 아니라 "인용"인데...진짜 너무나도 정확한 묘사다!!!) 키는 무척 작고(오케스트라 연주자들과 비교해보건데 160cm정도인듯) 무척 왜소하고, 게다가 머리는...지난번에 사람들끼리 얘 머리스타일은 비틀즈 시대의 장발족같다...라고 했는데 ^^;; 키도 작고 왜소한 장발족이 어깨뽕이 잔뜩 들어간 것같은 커다란 자켓을 입고 나오니 으흐흐흐..진짜 귀엽더라 ^^;; 얼굴은 진짜 "애기"고 (85년생) 딱봐도 정말 동구권에서 갑자기 등장한 순진무구 천재소년, 뭐 이런 분위기? ^^;; 아무튼 무대 위로 걸어나오는거나 인사하는 거나, 잔뜩 긴장했으나 그 긴장을 감추려고 무지하게 노력하는 태가 역력하던데, 피아노에 앉으니 훨씬 마음이 편안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연주 시작. 참 희안하다고 생각한 것이, 어제 자리가 상당히 앞쪽이었음에도 불구하고(알파벳 1자리수의 row에 앉아본게 얼마만인지;; 게다가 왼쪽이라 손가락이 잘 보이는 좋은 자리) 무대 위에서 들리는 소리가 참 "아련"하게 들렸다. 곡 자체가 워낙 스케일이 작고 오밀조밀한 곡이긴 하지만 블레하츠의 피아노 소리 자체가 참 보드랍고 "착하고" 바로 눈앞에 있는 뚜껑 열어놓은 스타인웨이에서 나오는 소리라기보다는 CD플레이어에서 나오는 오래전 녹음을 듣는 것같았다고나 할까. 왜 굳이 70년대라고 하냐면..꼭 70년대의 피아니스트 연주가 어땠기 때문에 그렇다기 보다는 블레하츠의 연주 스타일 자체가 요즘의 젊은 연주자들하고는 많이 달랐다는 뜻이다. 물론 어제는 라흐마니노프나 차이코프스키가 아닌 쇼팽 f마이너였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음량이 작고 굉장히 디테일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었다. 곡 전체에 드러나는 서정적인 분위기를 한껏 살리면서(full of lyricism) 한음 한음에 집중하면서 레가토 프레이징 처리에 정말 꼼꼼하게 신경을 쓰는 듯.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인공적인 느낌이 나진 않았다. 되려, 이 연주자는 원래 성품이 이렇게 조용하고 차분하겠구나 하는 짐작을 하게 만드는 연주였다. 운좋게 연주자의 손이 잘 보이는 위치에 앉은 고로 30분 내내 연주자의 손가락을 보고 있었는데 남자 피아니스트 치고 손이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직접 손을 보기전엔 모르지;;) 손가락이 굉장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냥 손이 작은가보다, 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피아니스트의 손을 뚫어져라 쳐다본 적이 별로 없으니 손이 작은 게 아니고 그냥 내가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왜 언급하냐면, 그 "작은" 손이 건반위에서 노니는 모습이, 정말 건반 하나하나를 사뿐사뿐 조심조심 "즈려밟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보드라운 융단 위로 사뿐사뿐 밟는 느낌. 블레하츠의 쇼팽은 그랬다. 물론 포르테도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메조포르테 정도의 음량으로, 오케스트라와 거의 융화되지 않는, 그야말로 "피아노 독주에 오케스트라 반주"인 이 곡에서 블레하츠는 번쩍이는 비루투오조적인 모습보다는 최대한 프레이징을 살리면서도 지나친 감성의 늪에 빠지지 않는 심플함을 추구하는 듯 보였다(다시 말하지만 워낙 곡 자체가 그런 비루투오조적인 곡은 아니다.) 하지만 블레하츠는 자칫하면 늘어져 멜랑꼴리하게 들릴 수도 있는 2악장에서도 한음 한음을 사뿐사뿐 짚어나가며 자신의 풍부한 감성을 드러내면서도 결코 지나치지 않는, 그래서 정말 좋은 쇼팽이었다. 지나침이 없는, 하지만 모자람이 없는, 그런 작은 쇼팽. 2000석이 넘는 거대한 사각형 모양의 에이버리 피셔 홀이 아니라, 작은 살롱에서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뒤에 두고 연주하는 그런 음악회같은 느낌. 하지만 음량이 작다고 해서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작지만 알찬 느낌, 적당한 깊이지만 무척 진지한 느낌. 근래에 봐온 또래 연주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블레하츠가 연주하는 독주곡들이 무척 궁금해졌다. 먼 훗날 "내가 오래전에 이 연주자 뉴욕필 데뷔를 봤었는데 난 얘(!)가 이렇게 클 줄 알았어!" 할 날이 올 것 같다. ^^ 신세계교향곡은 곡 자체가 좋긴 하지만 어제 연주는 좀 아쉬운 점이 많았다. 특히 2악장 후반에서 앙상블이 너무 무너져서 안타까웠다. 관악기 끼리도 너무 어긋나고 현악과는 당근 어긋나고..그렇지만 지휘자가 제대로 정리하지를 못했다. 마린 알솝의 음악적 구성력과 조직력, 오케스트라 장악력이 부족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몇 분이었다. 4악장에서도 그런 느낌을 자주 받았다. 좀더 음악이 치밀했으면 좋았으련만. 마린 알솝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아직 물음표인 것 같은데(스승을 잘 만난 덕을 많이 본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곤 하지만 지휘능력을 높이 사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일단 물음표를 찍어놓으련다. 드보르작같이 휘몰아치는 곡이 아닌 모차르트나 하이든을 보면 뭔가 좀더 명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예전에 봤던 브람스는 기억이 안난다 -_-;;; * * * 드보르작이 살던 집(327 E. 17th St.)에 가보고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제 프로그램 책자를 보니 그 집은 에이즈 말기환자 보호소(AIDS hospice)를 만든다고 90년대 초반에 헐렸댄다. 원래 사적지로 지정되었는데 그땅 소유주인 Beth Israel Hostical이 시 당국을 설득해서 이겼다나. 이런 사적지 부수는 건 좀 과장해서 우리나라뿐인 줄 알았는데 뉴욕도 별 수 없구나...아쉬워라. 그 대신 그 길 이름을 Dvorak Place라고 붙였댄다. 언제 한번 가보고싶다.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 프로그램 노트를 뉴욕필 웹사이트에서 가져와봤다. 정말이지 이 곡에서는 미국에 대한 느낌을 받을 수가 없다. 모든 멜로디는 드보르작이 창작한 것이고 정말 보헤미안 지방의 느낌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그가 작곡한 American Suite야말로 진실한 아메리칸 포크뮤직을 차용하거나 묘사한 곡이지, 신세계교향곡은 아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신세계교향곡은 미국에 대한 곡"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이건 바다건너 고향을 그린 노래지, 그가 살던 땅을 그린 노래가 아닌데. 아래 프로그램노트를 읽어보면 그 이유가 잘 나와있다. ANTONÍN DVORÁK (1841-1904) Symphony No. 9, From the New World (1893) At the invitation of the visionary Mrs. Jeanette Thurber, Antonín Dvorák (along with his wife and two of their six children) came to New York in 1892 to become head of the National Conservatory (located at east 17th Street and Irving Place), a school founded by her to encourage the development of American concert music. He composed his famous Ninth Symphony, nicknamed “From the New World” during his first year in America; the following year, the New York Philharmonic premièred Dvorák’s most beloved score at Carnegie Hall. A strong advocate of indigenous music as the inspiration for art music, he felt that America’s composers should look to their native land—not “the old country”—for inspiration he provided this comment about his Ninth Symphony: “Since I have been in this country I have been deeply interested in the national music of the Negroes and the Indians. The character, the very nature of a race, is contained in its national music. For that reason my attention was at once turned in the direction of these native melodies…It is this spirit which I have tried to reproduce in my new Symphony….I have not actually used any of the melodies. I have simply written original themes embodying the peculiarities of the music and, using these themes as subjects, have developed them with all the resources of modern rhythms, harmony, counterpoint and orchestral color.” His explanation notwithstanding, there is still plenty of the Old World in the ”New World” Symphony. As he remarked, the subtitle was intended to convey “impressions and greetings from the New World”… a sort of musical postcard from America. Filled with lovely melodies, bold calls from the horns, and an unforgettable theme that weaves its way throughout the symphony, the Ninth was also an expression of homesickness for his native Bohemia. The premiere was a smashing success, prompting Dvorák to write: “Carnegie Hall was crowded with the best people of New York, and the audience applauded so that, like a king, I had to take my bows repeatedly from the box in which I sat.” This symphony has entered popular culture, too, and many a man or woman on the street can hum the haunting “Goin’ Home” from the slow movement—always a star turn for the solo English horn. It made it into the movie Paradise Road, with Glenn Close organizing and leading a chorus of women prisoners of war in a Japanese POW camp in Sumatra in World War II. Having no instruments to play, their voices become the orchestra.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