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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의 레퀴엠을 검색하다보니 어떤 블로그의 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 다른 레퀴엠과 달리 희망적이다.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그렇다고 무신론자는 아니다. 신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믿는 자에겐 있겠고 믿지 않는 자에겐 없겠고. 하지만 "신"의 존재를 논하는 걸 떠나서 "보이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세상"의 존재에 대해 끄덕이게 된 순간이 바로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들었을 때가 아닌가 싶다. 다른 세상의 음악, "절대자"라고 불러야할 것만 같은 누군가의 음악을 모차르트는 들리는 대로 받아적기만 했을 거라는 생각. 나는 그래서 모차르트가 일찍 죽을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다른 세상, 절대자의 음악, 흔히 하는 말로 "천상의 선율"을 악보에 적고 있었으니 댓가를 치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도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모차르트를 생각하다보면 가끔은 프로메테우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절대자"라는 것은 두려운 느낌이다. 한때 유행했던 종말론처럼, "절대자"가 이 세상의 끝을 내는 때가 온다면 그 순간에 울려퍼지는 음악이라는 느낌이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처음 들었을 때 가사의 뜻을 알지 못해도 음악만으로 온전히 전해지는 느낌이 너무나도 강렬했다. 라틴어 가사 하나하나가 그대로 날아와 박혔다. 이건 그야말로 "디에스 이레" 아닌가. 입당송과 키리에 엘레이손, 디에스 이레로 이어지는 그 대위선율들에 숨이 막혔다. 하지만 포레의 레퀴엠은 다르다. 다른 세상의 음악, 절대자의 음악이라기보다는 이 세상의 음악, 이 "인간의 세상"에서 인간들이 부르는 노래. 세상의 종말 같은 것은 우리네 인간의 소관이 아니오, 다만 나는 지금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노래를 부를 뿐이오...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하늘을 뒤덮으며 온 세상을 통째로 쥐고 흔들 때, 앞으로 죽을 자와 살 자를 향해 심판의 나팔을 불 때, 포레의 레퀴엠은 이미 죽은 자를 위해 노래한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의 끝보다도, 이미 내 곁을 떠나간 이를 위해 부르는 노래. 이미 갈라진 생과 사. 포레의 레퀴엠은 그래서, 인간의 노래다. 포레의 레퀴엠은, 그래서 슬프다.
Andre Cluytens, conductor Monte Carlo Conservatory Concert Society Orchestra Dietrich Fischer-Dieskau, Henriette Puig-Roget, Victoria de Los Angeles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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