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덧글을 다시려면
로그인을 하셔야합니다
|
며칠째 프로그램 노트를 쓰고 있는데, 내가 기본적인 것을 쓰면 보스님이 퇴고를 하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다음주 중반까지는 인쇄소에 파일이 넘어가야하기 때문에 좀 정신이 없다..으으으. 이 일에만 매달려 있을 수도 없고, 하여튼 요샌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
어쩄든 모든 레퍼토리의 모든 것에 대해 꿰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불가능하지 않나 -_-) 여러가지 공부를 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참고자료를 찾아보기도 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갖기도 하고 회사 자료실/기록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특히 회사 기록실 분들은 그야말로 초~전문가이기 때문에 정말 많이 배우고 있다. 그 해박한 지식에는 그저 놀라울 뿐. 그런데 오늘 쓰고 있었던 곡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인데다가 잘 알지 못하는 곡이라서 공부가 많이 필요했다. 모자란 지식은 공부로 채우는 수 밖에. 그런데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다보니 이 곡과 깊게 연관된 사회적 배경이 1930년대의 birth control이랜다. -_-;; ('리듬법'이라고 혹시 아시는지...난 첨 들어봤다. 카톨릭신자들에게 인기있었다고 함.) 자료를 읽어내려가면서 순간 머리 속이 하얘졌다. 왜냐면...이 프로그램 노트는 어린이 음악회에 쓰일 예정이기 때문에. otz 동료들하고 배꼽빠지게 웃다가 이게 정말 정설인가 싶어 회사 자료실에 문의를 했더니 그분들도 처음 듣는 소리라면서 한번 자료를 찾아보시겠댄다. 공연 주제가 음악과 소셜 텍스트이기 때문에 만약 그 웹사이트의 내용이 사실이고 정설이라면 언급을 안하기도 곤란한데... 그렇다고 이 작곡가와 이 곡에 대한 자료를 찾는데 많은 시간을 쓸 수도 없는데. 에휴.. 골치 좀 썩겠군, 싶어 일단 거기서 스톱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다음 곡은 영화음악이다. 작곡가의 이름이야 익히 알고 있지만 영화제목은 처음 들어보기에 검색을 시작해봤다. 영화 줄거리 정도는 언급해줘야할 것 같아서... ...30초 후, 다시 머리 속이 하얗게. 영화줄거리: 뉴욕의 공원에서 rape당한 여자가 새디스트 sociopath에게 잡혀가..어쩌고저쩌고. -_-;;; 아무리 망한 영화라지만...이거, 영화음악인데 제목만 언급할 수도 없고. 아, 뭐냐고요.. 보스님, 이 모든 배경을 알고 프로그램을 짜신 겁니까 OTZ * * * 내가 여지껏 봤던 것 중 가장 솔직했던 프로그램 노트는 몇년전 링컨센터에서 열린 조슈아 벨의 독주회 때 연주된 에드가 마이어의 신곡이었다. 그 뉴욕공연 직전에 캘리포니아의 사라토가에서 세계초연되었던 곡이기에 이 프로그램 노트가 인쇄될 때는 이 곡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모양이다. 보통은 세계초연이라고 해도 작곡가에게 문의해서 이런저런 정보를 얻어 프로그램노트를 쓰던지 아니면 아예 작곡가에게 곡 소개를 해달라고 해서 직접 쓰게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이 경우에는 세계초연이 그 얼마 전에 있었고 에드가 마이어에게 곡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도 잘 안되었던 모양이다. 사실 난 세계초연되는 곡의 프로그램 노트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세계 초연(world premiere)라 함은 말 그대로, 세상에서 처음으로 이 곡이 '공식' 연주된다는 뜻일진대 기본적인 정보(곡이 탄생하게 된 동기라던가 작곡가의 의도, 기본적인 구성이나 편성 등등)를 넘는, 너무나도 지나칠 정도로 오버하는 프로그램 노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그 프로그램 노트를 쓰는 사람에게는 그 곡의 악보나 (사제)레코딩(대부분의 경우에는 악보)가 미리 전달이 되고 그 레코딩이나 악보를 보고 분석하여 프로그램 노트를 쓰는 프로세스가 이루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지나치다 생각되는 노트들을 읽을 때면 참으로 불편해진다. 처음으로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는 곡일진대, "이 곡은 불같이 타오르는...어쩌고저쩌고. 뛰어난 관현악 편성이 조직적이면서도 투명한 느낌이 어쩌고저쩌고." 대충 흉내내자면 이런 식. 악보를 보고 곡의 형식에 대해선 논할 수 있고, 리허설을 본다던가 레코딩을 들어본다던가 해서 그 곡의 느낌을 그 글쓴이는 미리 알 수도 있겠지만 그 곡이 공식적으로 첫 선을 보이는 자리에서 그런 '주관적인' 느낌을 꼭 그렇게 객관화시켜서 곡목해설에 넣어야하는지...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프로그램 노트에서도 "웅장한 관현악이 어쩌고저쩌고" "질풍노도가 어쩌고저쩌고"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것만 같은" 어쩌고저쩌고는 늘 등장하지만, 그런 "느낌"들은 그래도 오랜시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 곡을 들으며 느껴온, 그래도 '보편적'이라 부를 수 있는, 그러니까 '보편적이고 객관적인-'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사실 그 곡들로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느낌을 받는 것은 사실이고, 그렇기에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공통의 감정"을 노래하는 것이 음악이라는 것일 테니까. 비록 지금은 세계초연된다지만, 이 곡도 아주 많이 연주되고 난 다음에는, 아주 많은 관객들을 가지게 된 다음에는, 그 관객들이나 평론가들로부터 어떠한 공통된 감상을 받을 수 있을테고, 그때가 되어야만 그 '느낌'은 프로그램 노트에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더이상 한 개인이 그 곡으로부터 '받는(receiving)' 느낌이 아니라 그 곡이 '갖고있는(possess라고 해도 될지?)' 혹은 '주는(giving)' '보편적'인 느낌이 될테니까. I feel something from this music과 this music gives a feeling of...는 엄연히 다르다는 뜻이다. 그리고 함부로 후자의 양식을 빌려 말할 수는 없다. 이 곡을 들어본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이 곡에 대해 어떠한 정의를 내린다니,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다. 같은 식으로 쓰여진 브람스나 베토벤의 프로그램 노트는 아무렇지도 않게 읽으면서 그런 식으로 쓰여진 초연곡들의 프로그램 노트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건 아마도 그래서일 거다. 내가 오버하는 세계초연곡 프로그램 노트를 미워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뭐, 단순히 내가 귀가 얇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아니면 그저 간단히 말해, '곡이 주는 보편적인 느낌'말고 '개인적'인 감상을 프로그램 노트에 넣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그 곡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은 리뷰에서만 써줬으면, 아니면 적어도 이 곡이 공식적으로 초연되기 전까지는 보류해줬으면 한다. 작곡가가 아무리 이 곡은 이런 느낌이라고 해도, 아무리 글쓴이가 그 악보나 레코딩, 리허설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해도, 관객들이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면 아닌 거니까. (그런 곡들이 오래 살아남는 일도 별로 없지만.) 공연 전이건 후이건간에 글쓴이가 받은 그런 느낌들이 들어갈 자리는 프로그램노트가 아닌, 곡에 대한 리뷰나 공연에 대한 리뷰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그 주관적인 느낌이 보편적인 것이 되면, 그때의 그 글들은 비로소 프로그램 노트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건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의 구별, 선긋기의 문제다.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이 언제 어떻게 객관적인 사실이 될 수 있는가. 그런 이야기다. * * * 다시 에드가 마이어의 곡 이야기로 돌아오면 ^^;;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의 프로그램 노트는 이런 내용이었다. 대충 곡의 배경과 형식에 대해 언급한 다음, "이 프로그램노트가 인쇄소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우리는 이 곡에 대한 정보를 그다지 많이 갖고있지 않다. 우리는 관객여러분이 오늘 이 무대에서 조슈아 벨의 연주로 이 곡에 대해 알아나갔으면 한다." 세상에나, 이렇게 솔직한(!) 프로그램노트라니. 하하하. 처음엔 크게 웃었고("프로그램 노트 쓰기 귀찮았나봐~"하고 농담을 했다.) 다음엔 몇 번이나 곱씹어보았다. 그것은 세계초연이든 뉴욕초연이든 아니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구 곳곳에서 수만번은 연주되었을 베토벤이든 브람스든, 어떤 음악을 처음 듣는다는 그 특별한 경험에 관한 이야기였다. * * * 내 마음대로 곡을 골라 프로그램 노트를 쓸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주저없이 한 작품을 골랐다. 내가 가장 뜨겁게 사랑했고 가장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곡. 프로그램노트를 쓰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도 그거였다. 이 곡에 관한 "내 느낌"을, 내 눈앞에 펼쳐지는 그 영상을 어디까지 풀어놓아야 이 글이 리뷰가 아닌 "프로그램 노트"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결론을 내렸다. 세세한 해석의 범주가 아닌, 이 곡을 공부하는 동안 내가 표현해내고자했던 큰 바탕그림, 그것이 이 곡이 갖고있는 '보편적'인 느낌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동료들과 나누었던 대화들, 나의 고민과 그들의 고민, 나의 생각과 그들의 생각이 조금씩 혹은 많이 혹은 완전히 겹쳐있었으니까. 서로의 고민과 생각의 길이 만들어낸 교집합, 그 수만가지 고민과 생각의 길이 뻗어나가기 시작한 뿌리는 너무나도 선명하다. 그러니 이 프로그램노트는 별로 특별한 '사실'을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래도 이 곡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이 곡을 들어보고픈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모국어가 아닌데다가 글자수 제한까지 있어서(-_-) 하고픈 말을 구겨넣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선명하지만 그래도 이 글은, 이 작곡가와 이 작품에 바치는 나의 tribute다. JEAN SIBELIUS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us 47 (1905: Revised edition) Allegro moderato Adagio di molto Allegro ma non tanto Although the piano was the first instrument he learned to play, Jean Sibelius fell in love with the violin when he began playing it at the age of fourteen. "For the next ten years it was my dearest wish, my greatest goal and ambition to become a violin virtuoso," he later recalled. He even pursued violin performance while studying music composition in Sibelius began drafting his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us 47 in 1899, but it remained a work in progress for a few years. Finally completed in 1904, the concerto was premiered by the violinist Viktor Novácék, under the baton of Sibelius, in In the first movement, a sober melody by the soloist opens the piece after a short and foggy sounding 3-1/2 bar introduction by the strings. The thin and icy melody soon catches on fire as the four strings of the violin are used more freely. Following the dense first cadenza, the soloist sings the beautiful sixths and octaves in Largemente and proceeds to the dazzling second cadenza. Finally, in Allegro molto vivace, the piece shows how passages full of octaves and scales can thrill both the listener and performer. The second movement is full of lyricism. After the slow melancholy opening, the soloist sings with two voices in a syncopated rhythm. The ascending octaves in Pianissimo are breathtaking. Once described by the musical analyst Sir Donald Francis Tovey as "a polonaise for polar bears, the finale is full of exotic rhythms and melodies. It opens with repeating "heart-beat" rhythms created by the string and percussion instruments. The energy of the music pushes the soloist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of the movement, both technically and emotionally. The revised concerto did not fare any better than the original when it had its premiere. Even the great violinist Joseph Joachim described it as "hideous and boring." Although it took some time for this work to be appreciated, it is now (without a doubt) one of the most beloved concertos among violinists. This masterpiece, the only concerto completed by Sibelius, reflects Sibelius' passion for the violin and his dream of becoming a violin virtuoso. It is a beautiful tribute to the instrument he admired for a lifetime.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